♧`°클래식향기

하이든 / 첼로 협주곡 2번 라장조 H. 7b/2

봄날 아침에.. 2013. 2. 5. 07:54

 

 

Cello Concerto No. 2 in D major, H. 7b/2 (Op. 101)

하이든 / 첼로 협주곡 2번 라장조 H. 7b/2

Franz Joseph Haydn (1732 ? 1809)

No. 2 in D major - 전악장 연주

 

Performers: Janos Starker
Ensanble: Scottish Chamber Orchestra
Composers: Franz Joseph Haydn
Conductors: Gerard Schwarz
Original Release Date: February 1, 2005
Label: Delos RECORDS
Copyright: (C) 2005 Delos

Starker Plays Haydn Cello Concerto No. 2 in D major, H. 7b/2 26:45

Ⅰ. Allegro moderato - 15:49



Ⅱ. Adagio - 05:21



Ⅲ. Rondo: Allegro - 05:36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 부악장에 취임한후 약 30년간 6~8곡의 첼로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하지만, 현재 직접 작곡했다고 확인된 것은 1번과 2번 협주곡이다. 하이든은 아이젠 슈타트의 궁전에 거주하며 그의 주위에는 많은 연주자들이 있었는데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 안톤 크라프트의 조언을 받아 이 협주곡을 1783년에 작곡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교라든가 첼로의 완벽한 서정적 성격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806년에 '작곡가의 원본에 의거' 라는 주석을 달아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대한 논란이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1953년 하이든의 친필 악보를 찾아냄으로서 의심이 풀렸고 현재 원본은 빈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하이든의 대표적인 첼로 협주곡인 이곡은 원래 작은 실내합주를 위해 썼는데 19세기말 지휘자이며 음악학자인 제베르가 관현악 편성으로 확대시키고 솔로부분과 카덴자를 보안했다. 1960년대에는 장드롱이 좀더 원작에 가깝게 수정하여 출판했는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1924 - )
헝가리 태생의 미국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굴곡진 20세기를 살면서 자의로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했고, 서구 현대 문명의 특징인 냉철한 이성주의와 관념주의적 접근에 의한 절대미를 추구한 냉철하고 지적인 연주자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도 필요 이상의 몸짓이 없고 오직 음악을 위한 종사자이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중 한 사람이며, 현역 독주자 중 최원로급에 속한다. 야노스 슈타커는 1924년 7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원래 러시아 태생으로 헝가리로 이주했는데, 당시 국적도 얻지 못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감지하고 7세부터 첼로를 가르쳤다. 그는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Franz Liszt Academy of Music)에 입학해 다비드 포퍼(David Popper)의 제자였던 아돌프 쉬퍼( Adolf Schiffer)문하에 들어가 15세에 졸업했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연주대에 오른 슈타커는 1939년 음악원을 졸업할 즈음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이미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음악원 학생 시절, 자신의 스승 캐러비에게 코다이(Zoltan Kodaly)가 헌정한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초연하였다. 이를 계기로 슈타커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세계 음악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졸업 후,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로 취임하면서 연주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연주는 물론 거의 2년 동안 첼로를 만져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데, 1945년에는 부다페스트 오페라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을 겸임하게 되었고, 비로소 헝가리 국적을 획득했다. 또한 피아니스트인 조지 쉐박 (Gyorgy Sebok)등과 트리오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헝가리에서의 활동을 멈추고 1948년 루마니아,오스트리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댈러스 교향악단의 수석주자가 되었다. 그 후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의 요청으로 1949년부터 1953년까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1951년,피아노의 율리우스 카첸(Julius Katchen),바이올린의 요제프 수크(Josef Suk)와 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나, 1969년 카첸의 죽음으로 그만두었다. 다시 1953년부터 1958년까지 시카고 교향악단에서 수석주자를 맡은 다음 솔리스트가 되었다. 1958년부터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교육 활동도 하면서 뛰어난 첼리스트를 차례로 배출하였다.